Back To Top

NEWS
에코뉴스
한국 고래의 죽음이 말하는 사실들 [라스트 씨 ⑤]
2021.12.13

라스트 씨(Last Sea): 한국 고래의 죽음 취재를 마치며

 

# 어느 고래의 죽음

캡처.JPG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 제주본부 한 켠에 마련된 8평 남짓 부검실. 반들반들한 몸을 가진 새끼 돌고래 한 마리가 몸뚱이를 축 늘어뜨린 채 차가운 스테인리스 소재 테이블 위에 누워 있었습니다. 태어난 지 한 달 밖에 되지 않아 보이는 이 돌고래에게서 생명의 온기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코끝을 파고드는 역한 냄새가 돌고래 사체의 심한 부패 정도를 말하고 있을 뿐이었죠.

 

“상처가 보입니다. 머리와 얼굴 쪽에서 그물의 힘에 의해 생긴 흔적으로 추정됩니다.”

 

김상화 서울대 수의과대 수생물의학실 수의사가 가리킨 부위에는 7cm 길이로 그물에 졸렸을 때 보이는 상처가 여럿 보였습니다. 새끼 돌고래가 그물에서 빠져나가려고 발버둥 친 흔적입니다.

 

“폐로 숨 쉬어야 하는 고래가 그물에 갇히면 물 밖으로 못 나가니까 어구 안에서 발버둥 치다 죽는 겁니다. 인간으로 치면 익사죠.” 김병엽 교수는 “10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혼획(잡고자 하는 종이 아닌 다른 종이 함께 잡히는 것)으로 죽은 돌고래 사체가 유독 많이 발견된다”라며 이같이 말했습니다. 실제로 지난 7일부터 나흘새 제주도 해안에서만 돌고래 사체가 4구가 발견됐습니다.

 

# 어느 고래‘들’의 ‘떼’죽음

그런데 고래의 수난은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기후위기로 서식지가 파괴되고 먹이군이 사라져 떼로 굶어 죽은 채 발견되는 고래, 인간이 버린 폐어구에 걸려 꼬리가 잘린 채 살아가는 고래, 관광 어선 스크류에 지느러미가 잘린 고래, 바다에 버려진 폐비닐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노는 고래, 해상풍력발전단지의 소음으로 의사소통하는 횟수가 현저히 줄어든 고래, 돌고래 관광 보트가 좇아와서 밥 먹는 시간이 짧아진 고래….

 

헤럴드경제 〈라스트 씨(Last Sea): 한국 고래의 죽음〉 취재팀은 지난 9월부터 11월까지 약 3개월간 죽음이 차오르고 있는 고래의 오늘을 마주했습니다. 고래는 사람들이 바다를 두고 밥그릇 싸움을 하는 동안 영문도 모른 채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취재팀이 ‘한국 고래의 죽음’을 주제로 잡은 것은 인간이 다른 한 생명을 죽음으로 내모는 것도 모자라, 그들의 죽음을 무심하게 보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아울러 취재팀은 해양의 최상위 포식자인 고래가 처한 오늘이, 인간이 곧 겪게 될 미래일 수 있다는 사실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고래가 죽으면 바다가 죽고 바다가 죽으면 인간도 죽게 될 것이기 때문이죠.

 

# 기후변화 회의론에 대한 회의론

사실 이 모든 기획은 2019년도에 시작됐습니다. 그해 153개국 과학자 1만여 명이 성명을 냈습니다. 기후위기는 이미 눈앞에 닥쳤고, 허비할 시간이 없다는 엄중한 경고였습니다. 그런데 환경 분야는 여전히 ‘뒤로 밀리기 쉬운’ 주제였고 취재팀은 우리의 시선이 ‘밖’이 아닌 ‘안’으로 향하게 하고 싶었습니다. 지난해 〈라스트 포레스트: 기후변화 회의론에 대한 회의론〉을 기획해 현재 한국에서 벌어지는 사실(하얀 사과, 꿀벌 떼죽음, 가라앉는 제주, 왕우렁이의 습격, 운명 바뀐 두 나무)에 집중한 이유입니다.

 

올해는 바다생물에 초점을 맞춘 〈라스트 씨〉를 준비했습니다. 인간이 만들어낸 기후위기로 인해 해수면과 수온이 상승하면서 어종의 다양성이 현저히 줄었고 끝내 바다의 최상위 포식자인 고래가 굶어 죽어가고 있는 현실을 전하고자 했습니다.

 

# 한국 고래의 죽음이 말하는 사실들

그런데 고래를 보니 보이지 않던 문제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인간의 무분별한 어업 활동, 해양에 버려지는 쓰레기, 해양 개발, 돌고래 관광, 아쿠아리움 돌고래쇼까지. 눈앞의 ‘돈’을 좇는 인간의 경제 활동이 고래를, 그리고 바다를, 빠른 속도로 ‘파괴’하고 있었습니다. 지금처럼 인간이라는 한 종이 전 지구를 장악한 상태가 지속되면 인간은 물론 다른 동물도 멸종할 수밖에 없습니다.

 

〈라스트 씨: 한국 고래의 죽음〉 취재를 위해 이동한 거리는 6337km에 이릅니다. 서울과 부산을 16번 오가는 거리입니다. 인간으로 인해 전례 없는 위기에 처한 남방큰돌고래, 상괭이, 귀신고래를 마주하기 위해 우리나라 바다로 향했습니다. 제주도 제주시·서귀포시, 인천광역시, 전라남도 여수시, 경상남도 하동군, 충청남도 태안군 지역의 해역을 찾았습니다.

 

현장 취재를 마친 뒤엔 그와 관련된 데이터를 찾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국립수산과학원과 제주대학교에 최근의 상괭이 사체 발견 수와 혼획사 비율에 대한 자료를 요청했습니다. 해양동물생태보전연구소(MARC)와 핫핑크돌핀스에는 어구나 해양쓰레기로 인해 꼬리가 잘린 남방큰돌고래 관측 자료를 공유받았습니다. 또한 기후위기로 인해 굶어 죽고 있는 귀신고래를 분석한 최신 연구 논문 자료에 언급된 수치를 가독성 있는 인포그래픽으로 제작했습니다.

 

여전히 누군가는 고래들이 우리 바다에서 무사히 살아가든 말든 무슨 상관이냐고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에도 막대한 양의 이산화탄소를 내뿜는 인간과 달리, 고래는 죽을 때가 되면 자신의 몸에 엄청난 양의 이산화탄소를 저장한 채 저 스스로 바다 밑으로 내려갑니다. 또 고래의 배설물에 들어 있는 철분과 질소가 비료가 돼 식물성 플랑크톤을 자라게 해주고, 그 플랑크톤 역시 많은 양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합니다.

 

고래도 인간과 같은 포유류인데 말입니다.

 

# 라스트 씨: 한국 고래의 죽음
▶제주에서만 만날 수 있는 우리나라 토종 돌고래, 남방큰돌고래가 죽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남은 개체수는 겨우 120여 마리입니다.

 

 

▶한때 우리 바다에도 대형 고래가 있었습니다. 포경을 금지하고 1000만 원의 포상금까지 내걸었지만, 이 고래는 더 이상 한국 바다에서 발견되지 않고 있습니다.

 

▶매년 우리 바다에서 무려 1000마리 이상의 상괭이가 죽어가고 있습니다. 상괭이의 멸종은 시간 문제입니다.

 

 

dsun@heraldcorp.com

 

http://biz.heraldcorp.com/view.php?ud=20211211000094&ACE_SEARCH=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