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k To Top

NEWS
기획기사
흰 쌀밥에 스팸 한 조각…맛있지만 죄책감 드는 이유 [지구, 뭐래?]
2022.01.12

캡처.JPG

 

캡처.JPG

[헤럴드경제=최준선 기자] 따뜻한 흰 쌀밥에 스팸 한 장. 대다수 한국인의 침샘을 자극하는 한 입이다. 스팸에 대한 사랑은 국민적이다. 1987년 출시 당시 70억원 규모였던 스팸 매출은 지난 2020년 4500억원으로 불어났다.

 

하지만 일상 속 쓰레기 줄이기가 습관인 ‘제로 웨이스트’ 실천가들에게 스팸은 문제아다. 일부 환경 운동가들은 캠페인을 벌여 스팸을 공격하기도 한다. 도대체 무슨 일일까.

 

스팸 뚜껑, 뭐에 쓰는 물건?
문제로 지적된 것은 스팸의 포장재다. 알루미늄 캔과 캔을 덮고 있는 노란색 플라스틱 뚜껑 모두 재활용이 잘 되는 소재이긴 하다. 하지만 스팸 뚜껑의 경우, 재활용의 용이성을 떠나 ‘굳이 있을 필요가 있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캔 따개에 손가락을 넣어 제품을 개봉하기 전까지는 어차피 공기와 닿을 일이 없는 밀봉 제품인데, 왜 굳이 뚜껑을 만들어 지구에 플라스틱 쓰레기를 남기냐는 것이다. 실제 참치, 옥수수 등 캔에 담겨있는 제품 대부분이 뚜껑 없이 유통된다.

 

캡처.JPG

 

심지어 해외에서 제조·판매되는 스팸도 별도의 플라스틱 뚜껑 없이 유통된다. 결국 소비자들의 손가락질은 스팸의 국내 생산자인 CJ제일제당을 향했다. 지난 2020년 소비자 운동단체 ‘지구지킴이 쓰담쓰담’은 ‘스팸 뚜껑은 반납합니다’라는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스팸 뚜껑에 대해 ‘쓸모 없으니 도로 가져가라’는 목소리를 모아보자는 취지였다.

 

캡처.JPG

 

그렇다면 스팸 뚜껑에는 정말 아무런 기능이 없는 것일까. 식품사 측이 밝힌 공식적인 기능은 ‘충격 완화 용도’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적재나 운반 과정에서 파손이 없도록 플라스틱 뚜껑이 추가됐던 것”이라며 “캔 자체의 설계 측면에서도 해외 제품과 차이가 있어, 단순히 뚜껑만 없애는 방식으로는 식품 안전의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플라스틱 뚜껑과 함께 유통되는 것은 비단 스팸뿐만 아니다. 사조대림의 ‘안심팜’, 동F&B의 ‘리챔’, 롯데푸드의 ‘로스팜’ 등 주요 식품사의 통조림 햄 모두 플라스틱 뚜껑이 달린 채 유통되고 있다.

 

스팸 뚜껑, 사라지고는 있지만..
스팸 뚜껑을 달리 보는 소비자들이 많아지면서 식품사도 개선에 나섰다. 지난 2020년 추석 이후, 최소한 명절 선물세트에서만큼은 플라스틱 뚜껑을 제외하기로 한 것이다. 통조림 햄 선물세트는 별도의 트레이와 상자에 담겨 판매되기 때문에, 제품 파손을 방지하기 위한 장치인 플라스틱 뚜껑이 굳이 필요 없다.

 

이같은 변화로 플라스틱 배출량은 얼마나 줄었을까. 지난해 말 CJ제일제당이 밝힌 자료에 따르면, 오는 설 연휴 선물세트에 플라스틱 뚜껑을 제외한 것만으로 209t의 플라스틱 절감 효과를 거뒀다. 추석 연휴에도 비슷한 판매량을 거둔다고 하면 연간 약 400t의 절감 효과가 있는 셈이다. 스팸 외 경쟁사 제품들도 비슷한 행보를 보이고 있어, 통조림 햄에서만 지난해 500t 이상의 절감 효과를 거뒀을 것으로 보인다.

 

캡처.JPG

하지만 명절 선물세트 외의 개별 포장 제품은 여전히 플라스틱 뚜껑과 함께다. 스팸 제품의 경우 연간 판매량의 40%가량이 개별 포장으로 유통되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모든 스팸 제품을 플라스틱 포장재 없이 팔겠다는 것이 CJ제일제당 등 식품사들의 계획이지만, 구체적으로 언제까지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언급은 없는 상태다.

 

앞서 스팸 뚜껑 반납 운동을 주도했던 지구지킴이 쓰담쓰담 관계자는 “명절 세트에서 플라스틱 뚜껑을 제외하겠다고 밝힌 지 1년이 지났지만, 재고 물량 때문인지 실제 ‘무(無) 뚜껑’ 제품을 받아봤다는 소비자는 많지 않은 듯하다”며 “특히 개별 포장 제품에 대해서는 아직 구체적 개선책을 밝히지 않아, 소비자들의 관심이 이어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수십년간 유지됐던 통조림 햄 유통 시스템이 바뀌길 기다리기보다, 식품사들이 먼저 나서 소재 회수 시스템을 갖춰보면 어떨까. 이미 일부 화장품 제조사는 제로웨이스트 철학을 실천하는 지역별 거점 상점과 제휴해 자사 화장품 용기를 직접 회수하고 있다. 이렇게 모인 플라스틱 공병을 재활용 소재 공장에 보낸 뒤, 100% 재활용된 소재로만 만들어진 공병에 새 제품을 담아 판매한다. 소비자들의 참여만 뒤따르면 플라스틱 무한 순환도 불가능하지만은 않은 셈이다.

 

아직 스팸 뚜껑에는 적용되지 않았지만, CJ제일제당은 또 다른 국민 제품인 ‘햇반’을 내세워 자원순환 실험에 나섰다. 햇반과 수거 박스가 함께 담긴 기획세트를 구입한 뒤, 사용한 햇반 용기 20개 이상을 담아 계열 택배사(CJ대한통운)를 통해 돌려보낼 수 있도록 하는 캠페인을 시작한 것이다. 수거박스에 있는 QR코드만 찍으면 회수가 시작되는데, 용기가 회수될 때마다 멤버십 포인트도 쌓을 수 있다. 연간 수백t의 균일 크기 쓰레기가 배출하는 제품의 경우라면 이같은 자원 순환 시스템을 도입해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