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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렵기만 한 기후재난…다음 세대는 아이 낳을 수 있을까?” [2022 연중기획 지구 무죄 인간 유죄-④아시아 기후청년들이 절망을 극복하는 법]
2022.04.22

지구의 날…亞청년과 온라인으로 기후위기를 논하다
한·일·대만·필리핀·인도네시아 청년 만남
환경활동 중 겪은 좌절 허심탄회하게 공유
기존 세대 기후리더십 미래세대엔 크게 부족
변화 가능한 문제들 목소리부터 내야 ‘희망’
처한 상황·배경 달라도 오히려 더 협력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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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달, 매일 기후재난을 느낄 수 있어요. 우리 다음 세대는 지금보다 더 처참한 세상에서 살아야 할 텐데 과연 이 공포를 이기고 아이를 낳을 수 있을까요?”(인도네시아 청년 기후활동가 누룰 사리파)

 

4월 22일 ‘지구의 날’을 맞아 헤럴드경제는 비영리단체 ‘기후변화청년단체 GEYK’과 함께 아시아 각국에서 기후환경활동에 뛰어든 청년들과의 온라인 대담을 진행했다. 실제 환경운동에 나서며 겪는 답답함, 좌절 그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아이디어 등을 허심탄회하게 공유했다. 대담은 한국, 인도네시아, 필리핀, 대만, 일본 등 5개국 청년활동가로 진행됐다. K-팝 팬덤을 기반으로 기획사에 기후변화 대응을 요청해온 인도네시아 ‘케이팝포플래닛’의 누룰 사리파(22), 17년간 350.org, 그린피스 등 국제 환경단체에서 활동해온 필리핀의 재정활동가 척 바클라곤(40),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에 직접 참여해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해가고 있는 대만 청년단체 ‘TWYCC(Taiwan Youth Climate Coalition)’의 리온 양(22)·찌아이 린(29), 일본 청년단체 CYJ(Climate Youth Japan)의 코하나(22), 한국 GEYK의 김지윤(31)·이선재(21)씨가 참여했다.

 

“기후위기 차라리 몰랐으면 할 때 있어”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최근 공개한 6차 평가 제3실무그룹 보고서에서는 IPCC 보고서 최초로 ‘기후위기 우울’에 대한 언급이 등장해 주목받았다. 기후위기로 인해 불안·스트레스 등과 같은 정신건강 문제가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실제 ‘기후 우울 ’을 겪은 경험이 있나?

 

▶누룰=지난해 인도네시아 칼리만탄 지역에서 큰 홍수가 났을 때를 기억한다. 큰비가 2주 이상 이어졌고, 사람들은 전기도, 음식도 없이 갇혀 있었다. 이런 재난들이 해마다, 매일 반복되는데 우울하지 않을 수 있을까.

 

▶코하나=우리 같은 청년들이 과연 사회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칠 수 있을지 무력감이 들 때가 있다. 운 좋게도 내가 속한 단체는 정부와 만나 대화하거나 COP26에 참석해 토론할 기회를 얻기도 했다. 하지만 실제 정책 결정 과정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김지윤=차라리 기후위기라는 상황을 몰랐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그냥 내키는 대로 일회용 플라스틱을 소비하고, 누가 뭐라고 할 때 ‘신경 꺼’ 하면 훨씬 편하지 않겠나. 하지만 모든 상황을 알게 된 지금은 불안하고 답답해하더라도 이를 무시할 수 없게 됐다.

 

-기후위기 우울증이 저출산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가 소개되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찌아이 린=최근 발간된 IPCC 보고서상 미래 시나리오를 보면, 이번 세기가 끝나기도 전에 본격적인 기후변화가 시작될 것이라고 한다. 우리의 삶은 지금보다 훨씬 힘들 것이고, 이 때문에 아이들에게 안전한 환경을 제공하고 지속 가능한 미래를 물려주기 위한 비용은 더 많아질 것이다. 과연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누룰=인도네시아는 사실 아이 낳기에 좋은 환경은 아니다. 기후위기가 정말 심각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해마다 우기 때에 어딘가에 대피하거나 먹을거리를 미리 준비해야 하는 등 큰 불편을 겪는다. 대도시인 자카르타조차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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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기후 리더십, 5점 만점에 2점”

 

각국 정책 입안자들은 미래세대의 불안감을 잠재워줄 리더십을 보이고 있을까. 최소한 대담에 참여한 5개국 청년활동가들의 기대에는 크게 부족한 형국이다.

 

-각 나라의 탄소중립 및 기후위기 정책을 평가한다면?

 

▶척 바클라곤=필리핀은 현재 에너지의 40%를 석탄 발전원에서 얻고 있고, 재생에너지의 비중은 12%에 불과하다. 지난 2008년,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를 위한 보조금 관련 법이 통과됐지만 10년이 넘도록 시행규칙조차 확정되지 않았다. 화석연료업자들의 반발 때문이다. 신규 석탄화력발전소에 대한 건설을 중단하기로 했지만 아직 건설이 승인되지 않은 것들에 한해서만 적용하기로 했다.

 

▶누룰=인도네시아 정부는 2025년까지 재생에너지의 비중을 20% 이상으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하지만 아직도 석탄이나 가스 발전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전력의 80% 이상이 석탄·가스 등 화력발전원에서 생산되고 있다. 발전소로 인해 오랑우탄 등 동·식물의 서식지가 파괴되고 있고, 인근에 마을들에도 영향을 미친다.

 

▶리온=현재 대만의 재생에너지 비중은 5~6%에 그치지만 2025년까지는 20%로 높일 계획이다. 하지만 2027~2028년은 돼야 이 목표를 달성할 수 있으리란 전망이 나온다. 정부는 속도를 높여야 하고, 특히 산업계로부터 더 많은 협력을 이끌어내야 할 것이다.

 

-한국에선 기존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비판한 정치인이 차기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각국에선 원전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나.

 

▶리온=대만 정부는 2025년까지 원자력발전소 가동을 중단하기로 했다. 하지만 재생에너지만 의존해선 전력안정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많은 비판과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실제 차이잉원 총통 집권기간 내에 원전 문제에 대한 국민투표를 두 번이나 거쳤다. 하지만 결국 기존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코하나=일본 정부는 현재 6% 수준인 원전 비중을 2030년 20~22%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일본은 원전 사고의 피해를 크게 겪었던 나라 중 하나라 이에 대해 논란이 많다. 개인적으로 원자력은 발전소 인근 시민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등 운영 과정에서 부담이 적지 않다고 생각한다.

 

▶척=현재 필리핀에는 원전이 없다. 40년 전 마르코스가 집권하던 시절, 원전 건설이 추진된 적은 있다. 하지만 당시 독재정권은 원전 건설 사실을 사람들에게 숨겼고, 결국 가동되기도 전에 국민에게서 큰 비난을 받았다. 또 해당 원전이 가동될 예정이었던 해에 미국의 드리마일 핵발전소 참사까지 일어났기 때문에 결국 건설은 중단됐고 이후 줄곧 필리핀에선 원전이 가동되지 않았다.

 

“과대포장 문화, 외국 친구들에게 부끄러워”

 

각국 청년은 일회용 플라스틱 등 매일같이 쏟아지는 폐기물 문제에 대해서도 안타까움도 공유했다.

 

▶코하나=1인당 플라스틱 포장 폐기물 규모로 봤을 때 일본은 세계 2위다. 2020년 7월부터 플라스틱백(비닐봉지)을 공짜로 나눠주지 못하게 하는 정책이 시행됐다. 하지만 아예 일회용품 사용을 금지한 국가들이 생겨나기 시작한 만큼 늦은 감이 없지 않다.

 

▶리온=대만 정부는 2030년까지 모든 일회용품의 사용을 금지할 계획이다. 지금도 일회용컵과 다사용컵 사이에 최소 15센트의 가격 차이를 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현지 음료 가격의 10~20% 수준이다. 다만 프랜차이즈 편의점이나 음료 매장 외에 전통시장까지 규제 대상에 포함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생각한다.

 

▶척=필리핀에서도 많은 것이 플라스틱에서 종이로 바뀌고 있다. 일부 패스트푸드 체인점에선 정책적으로 다사용 유리컵만 사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정책이 폭넓게 적용되긴 힘들 것으로 보인다. 실제 모든 기업이 그런 정책을 채택해야 한다는 의무까지는 부과되지 않고 있다.

 

▶누룰=일본의 재활용문화가 뒤처진다고 했는데 인도네시아에선 아예 그런 문화가 없다고 보면 된다. 폐기물 관리 시스템이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각자 가정에서 분리 배출을 하더라도 결국 한꺼번에 같은 방식으로 처리되고 있다. 정부도 플라스틱 사용 규제를 계획하고 있지만 2030년부터다. 아직 8년이나 남았다.

 

“우울에 갇히기보다는 지금 할 수 있는 것에 최선”

 

기후위기라는 장벽 앞에서 청년들은 무력감과 우울감을 공유했지만 그럼에도 변화를 위한 의지를 다지고 서로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전했다.

 

▶척=사실 필리핀은 환경운동가들에게 가장 위험한 나라이기도 하다. 그래도 최대한 전략적으로, 상황을 긍정적으로 보려고 노력한다. 실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문제들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거기에서 시작된 변화들에서 희망을 본다.

 

▶이선재=기후위기를 체감할수록 우리 다음 세대가 과연 좋은 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을지 걱정도 늘어날 것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론 아이를 낳고 싶다. 미래세대에 대한 걱정과 고민은 기후위기에 대응하고 더 나은 복지 시스템을 만들기 위한 일종의 동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김지윤=기후변화의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지역은 아시아 대륙이라고 한다.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과 배경이 각기 다르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많이 협력해야 할 것 같다.

 

김상수·최준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