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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 수 없는 곳으로 전락할 내 고향…‘존엄한 이민’ 보장을” [H.eco Forum 2022-기후위기와 바다 ②]
2022.04.27

H.eco포럼서 기조 연설…아노테 통 前 키리바시 대통령 인터뷰
태평양 섬나라에 직면한 기후위기 호소…국제 관심 불러
IPCC “일부 나라 해발 2m, 이번 세기 중반 이후 사라져”
기후 적응능력 확보 못하면 유일 선택지 다른나라 이주뿐
주범은 선진국 배출 온실가스…적응 지원 등 책임 가져야
위기해결에 공포조장은 도움 안돼…정치적 게임화 경계를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을 0으로 줄인다 해도 태평양의 저지대 섬나라들은 이번 세기를 견뎌내기 힘들 겁니다. 그런데도 선진국들은 이에 대해 책임지기를 거부하고 있죠.”

 

아노테 통(Anote Tong·사진) 전 키리바시 대통령은 “선진국의 화석연료 사용과 그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이 지구 온난화의 주요 원인이라는 게 과학계의 결론”이라며 이같이 지적했다.

 

2003년부터 2016년까지 세 번의 임기를 마친 그는 재임 기간 기후변화에 취약한 키리바시 및 인접 태평양 국가가 직면한 기후위기를 전 세계에 호소하며 국제적 관심을 일으킨 인물이다. 기후변화 및 해양보전에 대한 공헌과 리더십을 인정받고 있으며, 지금까지도 전 세계에서 활발히 강연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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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위기 복원력 갖추도록 선진국이 지원해야”=아노테 통은 “높아지는 바다 위에서 살아가기 위한 적응 능력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키리바시와 같은 섬나라의 유일한 선택지는 다른 나라로 이주하는 것뿐”이라고 강조했다.

 

태평양에 자리한 일부 섬나라의 평균 해발은 약 2m. 지구촌이 온실가스 배출량을 급격히 줄이지 못하면 이 섬나라들은 이번 세기 중반 이후로는 더 이상 사람이 살 수 없는 지역으로 전락한다. 이는 일부 급진적 과학자 의견이 아닌, 유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보고서가 경고한 내용이다.

 

하지만 이같은 기후 변화를 초래한 주범들이 책임을 방기하고 있다며 아노테 통은 분노했다. 기후 재난을 가장 먼저 맞닥뜨릴 태평양 섬나라의 정치 지도자로서, 아노테 통은 국민이 고향을 떠나지 않아도 될 만큼 재난 회복력을 갖추는 걸 우선적으로 고민해 왔다. 잦은 홍수에도 무너지지 않을 도시 기반 시설을 갖추고, 재난을 입은 피해자를 지원하기 위한 재정 여력을 확보하는 것이다. 그러나 섬나라 자체적으로는 이를 위한 천문학적 비용을 감당해내기 힘든 실정이다.

 

아노테 통은 “태평양 섬나라들은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은 나라들에 배출량 감축뿐만 아니라 우리가 기후 재난에 대한 복원력을 갖추기 위해 자원을 지원해줄 것을 함께 요구해 왔다”며 “하지만 지난해 열린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도 선진국들은 기후 변화로 인한 손해 배상 책임을 거부했다”고 꼬집었다.

 

그는 ‘존엄한 이민’을 보장해달라고 요구했다. 아노테 통은 “선진국들이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을 주저하고 그 피해에 대한 책임 또한 거부한 전례를 생각하면, 우리가 충분한 적응 능력을 확보하도록 국제사회가 지원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며 “결국 우리가 고향을 떠나야 한다면, 우리 민족을 기후 난민으로 대하는 취급하는 대신 존엄한 이민 정책을 마련해줄 것을 제안했다”고 전했다.

 

▶“해양 오염, 얼마나 심각한지 보이지 않아 더 위험”=아노테 통은 전 세계적인 해양 오염 사태에도 주목한다. 바다는 섬나라 주민들 삶의 가장 중요한 원천임과 동시에 민족의 정신적 연결고리다. 하지만 육지와 바다 모두에서 이뤄지는 지속적인 자연 착취는 해양 생태계에 심각한 위협을 가하고 있다고 아노테 통은 진단했다.

 

그는 “육지 및 대기 환경과 달리, 달리 바다는 무엇이 버려지고 얼마나 망가지고 있는지 눈에 쉽게 보이지 않는다”며 “하지만 플라스틱 등 오염물질이 이미 가장 깊은 바다 생태계의 먹이 사슬까지 침투해 있음을 최근 과학계는 밝혀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세계적인 온실가스 배출량 증가는 해수 온도를 높이고 산성화시켜, 산호를 파괴하고 정상적인 해양 순환 패턴을 교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기후 위기 해결, 공포는 도움 안 돼…지도자가 책임져야”=여전히 기후 변화를 정상적인 순환 과정의 하나로 치부하며 위기를 외면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이들에게 ‘현실을 직시하라’며 공포를 조장하는 것 또한 기후 변화 대응에 유익하지 않다고 아노테 통은 평가했다.

 

그는 “우리 후손들에게 기후 변화의 잔인한 현실을 그대로 노출시키는 건 도움 되질 않는다. 그들의 삶을 비참하게 만들 뿐”이라며 “신뢰할 수 있는 해결책은 전적으로 그들의 지도자들이 찾아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아노테 통은 기후 위기 대응과 정치를 구분해야 한다고도 했다. 그는 “아쉽게도 우리 정부는 기후 변화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정치화됐고, 이는 미국, 호주, 뉴질랜드 등 국가에서도 마찬가지였다”며 “기후 변화는 우리 국민을 비롯한 인류 모두에게 가장 큰 도덕적 도전이자 실존적 위협이다. 결코 정치적인 게임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한편, 아노테 통은 오는 5월 26일 서울 노들섬에서 열리는 제2회 ‘H.eco포럼’(헤럴드환경포럼) 기조연설자로 나선다. 아노테 통은 태평양의 작은 섬나라들이 직면한 기후위기를 생생하게 전달하고, 섬나라의 지리적 구조가 얼마나 기후변화에 취약한지 알릴 예정이다.

 

최준선 huma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