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광우 기자] “더 이상 북극곰의 문제가 아니다”
흔히 기후변화라고 하면 떠올리는 모습이 있다. 얼마 남지 않은 빙하 위에 위태롭게 서 있는 북극곰의 모습.
어느 순간 ‘북극곰을 살리자’는 메시지가 환경 보호 흐름을 대표하게 되며,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목소리가 ‘배부른 소리’라는 취급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 또한 옛날얘기. 녹아내리는 빙하 위에서 생존을 위협받고 있는 존재는 더 이상 북극곰이 아니라, 사람들이다.
북극과 남극에서 얼음이 사라지고 있다는 소식은 하루가 멀다고 들려온다. 그러나 대중들에게 와닿지는 않는다.
인류 대부분이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사람들도 얼마 살지 않는 곳이 겪는 위기에 관심을 갖기에는 현대 사회의 문제점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극지방의 변화는 단지 ‘동물들이 살기 힘들어졌다’는 식의 감상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극지방은 지구 전체의 기후 흐름을 만드는 해류 시스템의 핵심 축. 이곳이 무너지면 우리 삶을 지탱하던 보이지 않는 규칙이 무너진다.
인류가 만든 거대한 문명 또한 지구의 규칙에 따라 지어진 것. 안타깝게도, 우리에게는 아직 어긋난 규칙을 되돌리거나 예측하거나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이 아직 없다.
무서운 점은 이런 극지방의 모습이 최근 더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는 것. 더 이상 우리의 삶을 바꿀 것이라는 ‘경고’가 아니라 실제 재난의 형태로 변화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세계기상기구(WMO)가 지난 3월 공개한 2025년 세계 기상 상태 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 전 지구 평균 기온은 산업화 이전(1850~1900년 평균)과 비교해 1.43도 높아졌다. 그리고 2015년부터 2025년까지 최근 10년은 인류의 관측 이래 가장 더운 10년으로 기록됐다.
우리가 체감하기에도 확연히 변화한 날씨. 예민한 극지방 생태계는 더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미국 해양대기청(NOAA)이 지난해 발표한 극지방 보고서에 따르면 북극은 지난 2024년 10월부터 2025년 9월까지 약 1년간 역사상 가장 따뜻한 날씨를 기록했다.
극지방의 변화 속도는 유독 빠르다. 2006년 이후 북극의 가을과 겨울 대기온도 상승률은 각각 전 지구 평균 상승률의 두 배를 넘었다. 겨울이 따뜻해지면 얼음이 충분히 두꺼워지지 못한다. 그 결과 다음 여름을 버틸 수 있는 오래된 얼음이 줄고, 다시 더 많은 바다가 드러난다. 드러난 바다는 햇빛을 흡수하고, 북극은 더 빨리 데워진다. 그야말로 악순환이다.
심지어 오랜 기간 유지됐던 극지방의 날씨가 완전히 전환되는 신호도 포착된다. 지난해 6월 북극의 적설 면적은 60년 전과 비교해 절반 수준에 해당했다. 겨울에 눈이 쌓여도, 봄과 여름에 접어들며 녹아내리고 있다는 것.
북극에 쌓인 눈의 양을 무시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눈은 햇빛을 반사해 지표를 식히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눈이 사라지면 땅과 바다는 더 많은 열을 흡수해, 지구 전체의 온난화를 가속하는 것. 우리를 지키던 하얀 방패가 사라지고 있다.
‘해빙’의 경우도 마찬가지. NOAA에 따르면 지난 2025년 9월말 북극의 가장 오래되고 두꺼운 해빙(4년 이상 다년생 해빙)은 1980년대에 비해 95% 이상 줄었다. 이제는 얇은 얼음밖에 남지 않았다.
이는 기온이 오르는 여름철에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다. 한창 얼음이 얼어야 할 겨울철도 마찬가지. NASA와 NSIDC는 2026년 3월 북극 겨울 해빙 최대 면적이 1429만㎢로, 2025년과 사실상 동률인 관측 사상 최저 수준이었다고 발표했다.
북극의 육상 생태계의 경우 최근 그 성질이 바뀌었다. 탄소 ‘흡수원’에서 ‘배출원’으로 바뀌고 있는 것. 기온 상승으로 인해 ‘동토층(얼어있는 땅)’이 녹고 있기 때문이다. 한 번도 녹지 않았던 언 땅이 녹을 경우, 그 안에 들어 있던 탄소가 대기 중으로 방출돼 기후변화를 유발한다.
지난 2024년에는 북미와 스발바르 영구동토 관측지에서 기록상 가장 높은 지중 온도가 나타나, 근처 강과 하천이 주황색으로 변하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동토층에 들어 있던 물질이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는 신호다.
이게 다가 아니다. NOAA는 2003년부터 2025년 사이 유라시아 북극의 식물플랑크톤 생산성이 80%, 바렌츠해가 34%, 허드슨만이 27% 증가했다고 밝혔다. 얼핏 보면 생산성이 늘어 좋은 일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한랭 생태계가 아한대·온대성 생태계로 밀려나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 바다가 따뜻해지면 플랑크톤, 어류, 해양 포유류의 분포가 바뀐다. 먹이망이 흔들리는 것이다.
북극 주변 바다의 변화는 더 극적이다. 2025년 8월 북극해 대서양 쪽 주변해 평균 해수면 온도는 1991~2020년 8월 평균보다 약 7도 높았다. 따뜻하고 염분이 높은 대서양 물이 북극으로 더 깊숙이 들어오는 ‘대서양화’도 진행 중이다. 이는 해빙을 더 쉽게 녹이는 역할을 한다.
북극이 더 이상 ‘차가운 곳’이 아닐 수 있다는 것. 그 변화의 여파는 대부분 인류의 삶을 망가뜨릴 수 있을 정도로 크다.
NSIDC는 그린란드 빙상이 전부 녹으면 전 지구 해수면이 약 7.4m 오르고, 남극 빙상이 전부 녹으면 약 60m 오를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인간이 유발한 지구 생태계 변화로 인해 대부분 문명을 물에 잠길 수 있다는 얘기다.
남극의 경우 ‘북극’에 비해 비교적 기후변화의 영향을 덜 받는 지역으로 취급받은 경향이 있다. 북극 해빙의 경우 매년 뚜렷한 감소세를 보였지만, 남극 해빙의 경우 그 변동성이 컸기 때문. 지난 2013~2015년에는 오히려 비교적 높은 해빙 면적을 기록해, 상태가 안정적이라는 취급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 또한 철 지난 얘기다. 지금으로부터 10년전. 2016년 이후 분위기가 바뀌었다. 국립빙설자료센터는 2016년 이후 남극 해빙이 대체로 장기평균보다 낮은 상태가 이어졌고, 2023년에는 여름 최소와 겨울 최대 모두 기록적 저점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2025년 남극 해빙도 다시 최저 수준이었다. 국립빙설자료센터에 따르면 2025년 3월 1일 남극 해빙 최소 면적은 198만㎢였다. 이는 2022년, 2024년과 함께 47년 위성 관측 사상 두 번째로 낮은 수준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남극 해빙의 변동성이 크다는 점을 근거로 해, 과거의 변동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다수 전문가는 남극 해빙 면적 변동의 경향성이 뚜렷해졌다고 경고한다.
특히 2022년 이후 2025년까지 남극 해빙의 최소 면적은 모두 200만㎢ 아래를 기록했다. 지난 47년간 관측 기록 중 가장 낮은 수치를 4년 연속 기록한 것이다. 이 때문에 남극 또한 북극과 마찬가지로, 겨울에 충분히 해빙을 회복하는 사이클을 벗어났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2025년 9월 17일 남극 해빙은 1781만㎢로 그해 최대치에 도달했다. 그러나 이 수치 역시 47년 위성 관측 사상 세 번째로 낮은 겨울 최대치였다. 2023년이 역대 최저, 2024년이 두 번째 최저, 2025년이 세 번째 최저였다. 여름뿐 아니라 겨울에도 얼음이 충분히 회복되지 않는 흐름이 반복되고 있는 셈이다.
가장 부각되고 있는 남극 생태계의 변화는 ‘이상고온’이다. 2026년 4월 국제학술지에 실린 한 논문에 따르면 2024년 7~8월 동남극 드론닝모드랜드에서 46년 위성 관측 시대 중 가장 강한 겨울 폭염이 발생했다.
지역 평균 지표기온은 평년보다 9도 이상 높은 상태가 17일 연속 이어졌다. 남극의 겨울 한복판에서 벌어진 일이다. 논문에 따르면 지난 2024년 8월 릴레이와 돔 후지 관측소에서 지표기온 편차는 각각 30.1도, 30.9도까지 치솟기도 했다. 지구의 냉동고가 ‘고장’난 상황이 펼쳐진 셈이다.
지난 6일에는 6월 기준 역대 최고 기온을 돌파했다. 남극 반도 북단의 아르헨티나 기지 온도가 15.4도를 기록한 것. 기존 6월 최고 기온이 13.3도(1998년)였던 것을 고려하면, 2.1도가량 더 높은 수치다. 지난 평균 기온이 영하 6.2도인 것과 비교하면 21도 이상 높은 ‘이상고온’ 현상이 나타난 셈이다.
하늘도 바뀌고 있다. 영국 남극조사단은 지난 5일 발표한 보도자료를 통해 탄소 고배출 시나리오에서 2100년까지 남극의 ‘대기의 강’과 같은 극한기상 현상은 두 배로 늘고, 관련 강수량은 2.5배 증가할 수 있다고 밝혔다. 대기의 강은 따뜻하고 습한 공기가 좁고 길게 이동하는 현상이다. 남극에서는 폭설과 비 등을 유발하는 요인이다.
눈이 많이 내리면 일시적으로 빙상 손실을 늦출 수도 있다. 그러나 따뜻한 공기와 비가 함께 오면 빙붕 표면 융해를 촉발하고, 빙붕 붕괴를 가속할 수 있다.
극지방의 변화는 우리의 삶도 변화할 수밖에 없다는 신호와 같다. 해빙은 지구의 ‘흰 방패’로 햇빛을 반사해 지구의 기온을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지금과 같이 해빙이 사라질 경우 남는 건 햇빛을 흡수하는 검은 바다뿐이다. 햇빛의 열을 그대로 저장한 바닷물은 전 세계로 흘러 들어가 기후 시스템을 변화시킨다.
극지방의 변화가 본격화된 지난 10년, 우리나라의 변화만 봐도 알 수 있다. 매년 여름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는 폭염은 기본. 이와 함께 찾아오는 에측할 수 없는 폭우도 해수 온도 상승과 연관돼 있다. 더운 바다로 인해 수증기가 더 많이 방출되고, 대기에 머물러 있던 수증기가 한꺼번에 쏟아지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 2018년부터 고온 기록이 잇따라 경신되며 온난화 강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2015~2024년 폭염일수 평균은 15.6일로 역대 가장 높은 수치를 나타냈다. 여름철 집중호우의 강도와 빈도도 증가했다. 몇 해 유난히 이상했다는 차원을 넘어, 한반도의 장기 온난화 추세가 최근 더 가팔라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기후변화를 외면한 대가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가시화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24년 한국은행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별도의 기후대응 정책이 실시되지 않을 경우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은 2050년까지 약 1.8%, 2100년까지는 21%가량 감소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이에 기후·환경 전반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북극곰’이나 ‘펭귄’ 등 동물을 구해야 한다는 등의 모호한 개념이 아니라, 인류가 위기에 처했다는 것. 스스로 멸종을 자초하고 있다는 현실을 환기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글로벌 환경단체 관계자는 “다수 기후·환경 캠페인에 대한 인식이 지구나 자연, 동물을 위한 ‘선의’에 가깝다는 편견이 형성된 게 큰 문제 중 하나”라며 “동정심이나 선민의식 아니라, 생존을 위협받는 우리를 살려달라는 외침에 가깝다는 인식이 각인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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