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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강암 걸리고 폐어구에 꼬리 잘려” 제주 돌고래 끊임없는 수난 [라스트 씨 ②]
2021.12.13

라스트 씨(Last Sea): 한국 고래의 죽음

 

# 남방큰돌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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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만 만날 수 있는 우리나라 토종 돌고래, 남방큰돌고래가 죽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남은 개체수는 겨우 120여 마리입니다.


# 남방큰돌고래가 사는 곳, 제주
인류가 처음으로 제주도에 정착지를 세웠던 1만 년 전, 이미 제주 바다에는 이 귀여운 생명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진한 회색빛을 띤 유선형의 몸, 밝은 회색이 도는 배, 머리 위쪽에 있는 숨구멍으로 사람처럼 폐호흡 하는 포유류. 바로 남방큰돌고래입니다.

 

남방큰돌고래는 우리나라에서 제주도 연안에서만 삽니다. 또 한 가지, 먼 바다로 나가지 않아도 육지에서 볼 수 있는 국내 단 하나뿐인 돌고래죠. 남방큰돌고래는 장거리 이동하는 대형 고래와 달리 처음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육지와 가까운 바다에 사는 연안 정착성 동물입니다. 제주에는 현재 120여 마리의 남방큰돌고래가 서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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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말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에서 만난 박순례(82) 씨는 남방큰돌고래를 가리켜 ‘곰새기’라고 표현했습니다. 43년간 제주 해녀로 살았던 박 씨는 손을 휘휘 저으며 “곰새기 노는 딘 상어 하나 조친다(돌고래 노는 데는 상어가 따라온다)”고 덧붙였죠. 바다에서 물질을 하다가 돌고래가 나타나면 작업을 멈추고 늘 주변을 경계했다는 설명이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 언급됐을 정도로 제주도 연안에는 오래전부터 돌고래가 뛰놀았습니다. 그러나 이 돌고래의 존재가 널리 알려지게 된 건 비교적 최근 일입니다. 이날 오전 10시께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 해안도로에서 만난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센터 김현우 연구사는 “2000년대 초반에 이르러서야 제주도의 남방큰돌고래가 학계의 관심을 서서히 받았다”라며 “오랜 기간 그 생김새 때문에 하나의 독립된 종으로 인정받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김 연구사는 큰돌고래로 알려졌던 돌고래의 유전자를 분석해 ‘남방큰돌고래’로 이름 붙인 장본인입니다. “2001년 봄, 우도 해변을 걷다 수십 개의 등지느러미를 봤어요. 한국에서 고래를 보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뜻밖의 만남이 저를 고래 연구의 길로 이끌었어요.” 14년간 매년 분기마다 제주에서 돌고래 생태 조사를 하는 김 연구사가 처음으로 남방큰돌고래를 마주했을 때를 떠올리며 수줍게 웃었습니다.

 

# 우리가 친밀감이라고 믿는 것

그런데 최근 들어 남방큰돌고래의 처지는 꾸준히 참담해져 가고 있습니다. 지난 9월부터 11월까지 헤럴드경제 〈라스트 씨〉 취재팀이 추적한 결과, 관광객을 태운 배들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최소 24회 이상 남방큰돌고래 떼를 집요하게 쫓아다니고 있었습니다. 돌고래 관광상품이 처음 등장한 건 5년 전이었는데요. 코로나19 이후 관광객이 몰리면서 운행 선박은 3배 가까이 늘었습니다.

 

장수진 해양동물생태보전연구소(MARC) 연구원은 남방큰돌고래가 선박을 ‘회피’하는 행동을 하면서 하나의 행동을 하는 지속 시간이 짧아지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남방큰돌고래는 먹잇감을 찾고 이를 먹는데 하루의 40% 이상 시간을 사용합니다. 그런데 선박이 다가올 때마다 이 행동이 단절돼요. 우리가 밥을 먹고 있는데 5분마다 자꾸 전화가 오는 상황과 같은 거예요.”

 

이뿐만이 아닙니다. 여러 대의 돌고래 관광 어선이 남방큰돌고래 떼에 가까이 다가가는 모습은 일본 다이지 마을과 페로 제도에서 고래를 사냥하는 방식과 흡사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입니다. “남방큰돌고래는 선박들에서 나오는 소음을 하나의 그물로 인식해요. 그래서 돌고래 관광 선박이 서로 경쟁하면서 남방큰돌고래에 가까이 붙으면, 이 돌고래는 배와 육지 사이에서 더 이상 빠져나갈 수 없는 코너로 점점 몰리게 됩니다.” 김병엽 제주대 해양과학대 교수는 “스트레스를 받은 돌고래는 유영이 점점 더 거칠어지는 등 이상 행동을 보인다”라며 이같이 우려했습니다.

 

위험에 처한 남방큰돌고래를 보호하기 위한 정부의 노력이 전혀 없던 건 아닙니다. 해양수산부는 2017년 돌고래 보호를 위한 규정을 만들었습니다. 배가 돌고래 무리 50m 이내로 접근하지 못하게 한 건데요. 문제는 이 규정이 큰 의미가 없다는 겁니다. 돌고래 보호 규정을 어긴 배를 4년 넘게 꾸준히 추적해온 조약골 핫핑크돌핀스 대표는 “강제 규정이 아닌 가이드 라인이다 보니 선박회사가 규정을 위반해도 어떠한 법적 제재가 가해지지 않는다”고 토로했죠.

 

# 죽음이 차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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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고래는 음파를 이용해 ‘세상의 지도’를 인식합니다. 지능이 높고 사회성이 강한 돌고래는 그들만의 방법으로 대화도 합니다. 일명 ‘시그니처 휘슬’입니다. 돌고래는 이 소리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친구들과 의사소통을 합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뒤부터 제게 바다는 몹시 과학적인 풍경으로 보였습니다. 제가 감히 흉내 낼 수도 없는 방식으로 대화하는 남방큰돌고래들을 상상하는 것이 취재 일과 중 하나였죠. 그런데 바닷속 남방큰돌고래의 의사소통을 방해하고 있는 건 선박에서 발생하는 소음만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저희 취재팀을 더욱 씁쓸하게 만들었습니다.

 

남방큰돌고래가 서식하는 지역에는 제주 해상풍력발전단지가 들어설 계획입니다. “해상풍력발전단지가 들어설 곳은 연안에서 2km 안쪽입니다. 남방큰돌고래가 서식하는 지역과 정확하게 겹칩니다.” 김미연 해양동물생태보전연구소(MARC) 연구원이 남방큰돌고래의 건강성을 크게 우려하는 이유입니다. “발전단지를 짓기 위해 큰 선박이 계속 다닐 겁니다. 발전단지를 짓기 위해 땅을 파게 될 때 소음이 발생하게 되고요. 마지막으로 해상풍력발전단지는 운영되지 않는 시간에도 계속 바다 속에 소음을 만들어냅니다.”

 

# 고래 배설물의 공기 정화

고래, 돌고래는 바다가 살아있게 돕는 역할을 합니다.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아낌없이 주는 나무’로 비유하는 이유입니다. 고래는 숨을 쉬기 위해 수면으로 올라옵니다. 수면에서 고래들은 배설물을 방출해 식물성 플랑크톤이라는 아주 작은 식물에 비료를 주고요. 이 플랑크톤은 광합성을 하면서 막대한 양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우리가 마시는 산소의 50%를 만들어 냅니다. 따라서 기후변화를 우려하는 세상에서 고래를 보호하는 건 지구 전체를 보호한다는 의미입니다.

 

# 남방큰돌고래의 끊임없는 수난
그런데 우리는 남방큰돌고래가 사는 바다에 돌고래 관광 선박을 띄우고 무분별한 해양 개발을 진행하는 것도 모자라, 1분마다 트럭 한 대 분량의 플라스틱 쓰레기까지 버리고 있습니다. 가히 ‘남방큰돌고래 수난 시대’라 부를 만한 상황입니다.

 

취재팀은 해조류를 지느러미에 걸치며 노는 남방큰돌고래가 해양 쓰레기를 가지고 노는 모습을 포착했습니다. 폐어구가 지느러미나 꼬리에 걸려서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남방큰돌고래도 여럿 발견됐습니다. 졸지에 위기를 맞이한 남방큰돌고래가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는 현상의 존재를 말없이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어떤 일상의 편의를 도모하는 것들, 생각 없이 버린 폐기물들 때문에 말입니다.

 

“고래도 인간들처럼 포유류입니다.” 제주에서 만난 연구자 모두가 한 목소리로 헤럴드경제 〈라스트 씨〉 취재팀에 전한 말입니다. 어쩌면 지금 세대가 남방큰돌고래를 보는 마지막 세대가 될 수도 있느냐는 질문에 이들은 ‘남방큰돌고래가 없는 바다’를 상상하고 싶지 않다고 전했습니다.

해양의 최상위 포식자인 고래의 죽음은 바다의 죽음을 말합니다. 바다가 죽으면, 인간도 살 수 없습니다. 모든 생명은 생명과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어, 한 생명의 죽음이 죽음으로 끝나는 경우는 없습니다. 인간이 없더라도 지구는 아무 지장 없이 돌아가도록 잘 설계되어 있지만 말입니다.

 

d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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